# ‘외과계열 대학병원 부교수 A는 오늘 아침 수술이 있어 8시까지 수술방에 와야만 한다. 하지만 출근은 훨씬 이르다. 수술을 8시 30분쯤 시작하려면 그전에 환자 회진을 돌아야 한다. 오전 7시에 담당 전공의와 만난 A는 1 시간 가까이 회진을 돌고 컨퍼런스에 늦지 않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돌린 후 쉴 틈도 없이 바로 또 수술실로 향한다.
수술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는 바로 또 오후 외래다. 오후 외래에 예약된 환자 수는 약 80 명. 환자 한 명당 그야말로 칼같이 빠른 진료를 하지 않으면 저녁 회진조차 언제 돌지 알 수 없다. 최근 병원 재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과장회의 때마다 외래진료 환자 유지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듣는다.
바쁘게 환자를 본 A는 다시 담당 전공의를 만나 오후 회진을 돌고 나서야 늦게 저녁을 먹는다. 최근 실습 학생들에 대한 티칭은 담당 전공의에게 다 떠넘겼다. 미안하지만 A로서도 요즘은 당장 도리가 없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교수연구실에 들어오니 저녁 8시 30분. 자리에 앉으니 졸음이 절로 온다. 기한이 다음 달까지인 논문은 아직 마무리를 해야 하지만 오늘은 또 힘들 것 같다. 교수연구실에 오래 있어봤자 어차피 연장근로수당은 단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
‘오늘만 날이냐...집에나 가자.’ 어차피 원래 A가 하고 싶었던 연구는 학교에서 연구비가 나오지 않아 포기한지 오래다. 이번 연구는 재임용을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가까운 일본이 또 다시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의학 분야에서만 벌써 두 번째이며, 과학 분야에서는 16번째의 수상자가 나왔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 분야 전체에서 수상자가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전국의사총연합은 11일 이 같은 의료계 현실을 직시하며 정부가 노벨의학상 수상자 배출계획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현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아래와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교토 의과대학의 야마나카 교수는 환자를 보는 임상교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환자를 보는 의사의 길을 걷다가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자 연구소 근무 쪽으로 진로를 바꿨고, 결국 연구자로서의 길로 큰 결실을 보았다. 이렇게 의료 연구 쪽에서 꽃을 피우려면 연구소 등의 재정을 받쳐주는 대학병원의 재정적 힘이 든든해야 하며 이는 결국 커다란 토양 위에서 수십 년의 뒷받침이 지속되지 않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공개한 정보에 의하면 우리나라 의과대학 가운데 1년간 교원 1 인당 평균 연구비가 1천만 원에도 미치지 않는 낙제급 의과대학이 11곳이 있고, 전체 연구비가 1년에 50억 원 미만인 의과대학이 18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거의 형식적인 수준의 연구비로서 전체 의과대학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연구에 시늉만 내는 수준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상을 자랑하는 모 대기업 병원의 경우 1년간 교원 1인당 평균 연구비가 전체 가운데 평균 이하인 3800만 원 수준으로, 진료중심의 병원으로서만 운영을 할 뿐 사실상 연구 쪽은 이미 포기상태임을 가늠한다. 1년간 교원 1 인당 5000만 원 이상의 준수한 성적의 대학은 10곳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물론 대학병원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살인적인 저수가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매진하고 있고 진료분야에서 막대하게 나오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장례식장이나 주차장 수입으로 벌어 메우고 있는 사실은 이미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대학병원들은 의사들에게 연구 실적보다는 환자수 및 매출 유지 실적을 강조하는 경영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은 많은 시간을 진료 영역에만 묶여 지낼 수 밖에 없다. 의료보험은 강제지정제로 다른 수가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대학병원들은 살인적인 저수가를 타개하기 위해 각종 비급여 항목을 개발해 재정을 유지해야 했다.
일례로 비보험 분야로 병원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준 로봇수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한다는 지경에 이른 것도 사실 연구 분야의 빈약한 실적에 비하면 창피한 일이지만 오로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나라 대학병원들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대학과 대학병원에 연구의 꽃이 피려면 정부는 현재의 대학병원들의 재정상태가 과연 의료분야 연구 선진국에 비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해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정부는 늘 정치논리에만 기대어 의료 수가인상에는 늘 인색하고 강압적인 정책만을 대학병원에 강요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공단의 구조조정처럼 감사원의 지적 사항이 있는 재정적인 안정요인은 역시 정치적 부담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공룡처럼 커진 기이한 덩치의 현재의 건강보험공단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건강보험공단 지사의 휘황찬란한 빌딩의 신축에 들어간 막대한 재정이 결국 대학병원들의 연구비로 변환될 수 있었던 기회가 과연 정부에게 없었는지 그 근본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과 대학병원들이 연구중심의 병원운영을 포기하고 진료중심의 수입과 생존을 위한 경영을 하면서 나타나는 문제는 단지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피상적인 것뿐이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 실로 막대하다.
대학병원들이 생존을 위해 외래진료를 활성화해 주변 개원가의 환자를 끌어들일 뿐 아니라 서울에 위치한 소위 빅5 병원들은 지방 대학병원의 환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방 경제를 무너뜨리고 지방대학들의 재정적인 안정성을 위협하며 의료전달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일본이나 선진국의 경우처럼 대학병원들이 본연의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대학병원의 연구중심의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결국 이 모든 일본에 대한 부러움은 백 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