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유전정보가 모두 DNA에 담겨 있다는 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보고됐다.
이같은 결과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전체의학연구소(소장 서정선, 사진)가 마크로젠 생명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인 18명의 DNA와 RNA를 동시 분석한 연구논문에서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동일인에 대해 DNA와 RNA 서열을 동시 분석했다는 점과 단일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 유전체 분석 결과라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논문이 Nature Genetics의 주목을 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 DNA 서열 중심인 기존의 유전체 논문에서 진일보해 RNA 서열 분석을 추가함으로써 유전자의 발현과 그 기능적 측면까지 밝혀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DNA 서열 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RNA 자체 서열 변이(TBM, Transcriptional Base Modification)가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졌다.
즉, DNA의 염기서열은 RNA로 똑같이 전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사되는 과정에서 염기가 바뀜으로써 DNA에 없던 변이가 RNA에 새롭게 생기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변이의 존재가 일부 보고된 적은 있으나, 모든 염기로의 변환이 가능하며 그러한 자리가 최소 1800개 이상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또 RNA 서열분석을 통한 '비대칭 발현(allele-specific expression)', 기존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도 전혀 겹치지 않는 유전자 후보 등 남녀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X 염색체 상의 유전자 등 새로운 발견들이 대거 쏟아져 향후 RNA 서열 분석이 유전체 연구의 중요한 핵심 기술로 등장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DNA 연구를 통해 특정 변이의 존재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특성과 질병의 대부분이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져왔다.
그러나 연구에서는 DNA에 존재하지 않는 변이가 RNA에서 생긴다든가, DNA에 존재하는 변이도 RNA로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점을 고려한다면 RNA 서열 분석이 향후 인간 유전체 연구의 필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연구는 단일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최대 규모의 고해상도 게놈 분석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해상도로 분석된 유전체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큰 규모로, 양적 측면에서 세계 최대 수준의 유전체 서열 정보를 보고함으로써 유전학 연구의 귀중한 기초 자료를 학계에 제공함과 동시에 한국인 유전체 정보가 국제적으로 활발히 연구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것이 연구진들의 평가다.
논문에서는 한국인 18명의 게놈 분석을 통해 950만개 이상의 게놈 변이를 밝혔는데, 이중 220만 개 이상이 기존의 연구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다.
현재까지 인류 전체에서 발견된 게놈 변이가 약 3천만 개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인 18명 연구를 통해 발굴된 변이는 상당한 양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에서는 새롭게 발견한 220만개의 변이 중 약 120만개가 한국인에서 최소 10% 이상 존재하는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정선 교수는 "민족마다 대대로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이에 적응하기 위한 고유한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면서, "논문은 유럽인과 다른 한민족의 유전체 변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유럽인 중심의 기존 질병 유전자 발굴 연구 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교수는 "이제 각 민족의 질병 유전자 연구는 그 민족의 유전체 정보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것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인의 유전체 연구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 논문은 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7월 3일자 (영국 현지시간 기준)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