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이 만성질환 관리제 반대를 선언하고 대다수의 회원들이 따르고 있으나, 극히 일부 내과계 회원들은 만성질환 관리제가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이득이 된다며 제도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만성질환 관리제가 내과계에 득이 되는지 살펴보자.

◇ 선택과 등록이라는 절차가 없고, 단순한 진료비 할인제도로써 병원환자들이 의원을 이용하는 유인정책이 될 수 있다.

▶ 과연 선택과 등록의 절차가 없는가.

만성질환 관리제를 이용하기 위해서 환자는 해당 의원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내원할 의사를 밝히고, 의원은 그 의사를 받아들여 차트에 지속내원의지가 있다는 것은 기입하고 다음 내원 시 부터는 별도의 진찰료 코드로 청구하면 환자본인부담금이 30%에서 20%로 절감된다. 환자는 어느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만성질환 관리 의원으로 지정할 수 있다.

위 사항을 살펴보면 결국 환자가 의원을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의원은 그 환자를 차트에 기입하고 다음 내원 시부터 별도의 진찰료 코드를 붙이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별것 아닌 행위 같지만 결국 선택과 등록이라는 절차가 분명히 존재하며, 또한 귀찮은 절차임에 틀림없다.

다니던 병의원을 쉽게 바꾸지 않는 만성질환자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절차만으로도 다른 병의원으로 이동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비

록 강하지는 않지만, 특정 의원급 의료기관과 환자와의 일종의 계약이 형성되는 것이며, 이는 향후 주치의 제도로 진전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기존 만성질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의원일수록 유리하므로 신규 개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 단순한 진료비 할인제도인가.

일각에서는 만성질환자에 대한 단순한 진료비 할인제도이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럴까. 만성질환 관리제에 의해 등록이 되면 당뇨, 고혈압 처방을 받는 경우 10%(920원) 진료비할인이 된다.

그러나 당뇨, 고혈압 처방이 아닌 일반 질환에 대한 진료 시에는 할인이 되지 않는다.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다른 질환으로 진료 받을 때는 진료비가 비싸니, 진료비 할인이 되는 당뇨, 고혈압 처방받을 때 다른 약까지 모두 처방받으려 할 것이 뻔하다.

결국 만성질환 약제를 투여 받던 일반 진료를 받던 진료비가 동일할 때는 언제든 자유롭게 내원하던 상황에서, 진료비가 할인되는 진료에 여러 처방을 요구하고 가급적 진료비가 비싼 일반 진료는 자제함으로써, 결국 환자들의 전반적인 내원일수가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래도 이것이 단순한 진료비 할인제도인가.

▶ 병원 내원 환자들이 의원으로 내원하는 유인책이 될 것인가.

이번 만성질환 관리제를 통해 65세 이하 환자는 내원 건당 진료비 920원 절감효과가 있다. 만성질환자들은 연간 평균 8회 정도의 내원일수를 보이므로 연간 7,360원의 비용감소 효과가 있는 것이다.

65세 이상은 진료비 총액이 15,000원 이상인 경우에만 혜택을 받으므로, 연간 약 2,000원 이내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연간 8천원도 안 되는 비용절감 효과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오히려 싼 비용의 진료 자체가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인식을 더욱 나쁘게 해 '병원 = 고급진료, 의원 = 싸구려 진료'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 건강지원서비스는 만성질환 관리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

만성질환 관리제의 또 하나의 특징이, 원하는 환자들에 한해 공단이나 보건소의 건강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성질환 관리제를 찬성하는 의사들은 공단이나 보건소의 건강지원서비스 자체가 만성질환 관리제와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므로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과연 맞는 말일까.

얼마 전 H 의료전문지의 기사에 의하면, 공단은 7월 이후 만성질환 관리제를 시행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전화나 기타 방법을 통해 건강지원서비스에 대한 설명 및 보건소에서의 정보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공단으로 청구된 내역을 봐서 만성질환 관리제 진찰료가 청구된 환자들을 골라내 연락하겠다는 것이다.

청구내역을 보고 연락을 하는 것이 개인정보보호에 문제가 있느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공단이 건강지원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하는 상황에서 만성질환 관리제를 이용하는 환자들을 선별적으로 골라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즉, 지금 환자를 만성질환 관리제에 등록시키는 것 자체가, 의사나 환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공단과 보건소가 공식적으로 개입하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고, 그 동안 과거 공단이나 보건소의 행태로 미루어보아 그 피해는 환자를 비롯하여 의사에게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의료행위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다.

혹자는 만성질환 관리제를 통해 인센티브를 받으니 시행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심평원이 그 동안 시행해왔던 약제비평가 및 진료행위에 대한 적정성 평가를 고려한다면 작은 인센티브를 통해 약제비 절감과 진료비 절감을 노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작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우리 스스로 의약품 처방권과 진료권을 그들에게 저당 잡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부분이 성과연동지불제(P4P, pay for performance)라는 새로운 지불제도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P4P는 의료인의 진료행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지불액을 달리하는 것으로 인센티브 뿐 아니라 페널티도 포함됐다.

총액계약제와 같은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의료의 질이 감소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 의료의 질을 평가하여 적절한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주는 제도가 바로 P4P이다.

지금은 연간 350억원 가량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지만, 언제 어느 순간에 페널티를 부가할지 모르며,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총액계약제, 더 나아가 무상의료 때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제도로 정착이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별다른 정책적 부담 없이 총액계약제나 무상의료가 시행되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번 만성질환 관리제는 선택과 등록이 없는 단순한 진료비할인제도이며 인센티브까지 있는 좋은 제도처럼 보이나, 실제 그 내막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 선택과 등록이라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 주치의 제도 전단계로서 역할을 할 것이며, 신규 개원의의 진입장벽으로 존재할 것이다.

▲ 진료비 차이가 존재하므로 진료비가 싼 진료시에 다른 처방까지 요구함으로써, 결국 환자의 내원일수가 감소할 것이다.

▲만성질환 관리제 등록 자체가 공단과 보건소의 공식적인 개입을 유도할 것이다.

▲ 성과연동지급제(P4P)는 향후 총액계약제와 무상의료의 정책적 토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만성질환 관리제는 결코 내과계에 유리한 제도가 아니며, 오히려 정부가 쳐놓은 덫에 먼저 걸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지금은 맛있는 당근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목을 죄는 강력한 목줄이 될 것이다. 별로 되지도 않는 당근을 좋다고 덥석 받아먹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면 안 되는 이유다.

아직도 만성질환 관리제가 내과계에 유리한 제도라 생각하는 일부 의사들은 지금이라도 만성질환 관리제를 거부하기 바란다. 만성질환 관리제에 대한 섣부른 참여가 동료와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결국 자신에게도 피해를 유발할 것이다. 다함께 만성질환 관리제를 거부하는 것만이 결국 자신도 살고, 동료도 살고, 또한 환자도 사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명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