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되찾았지만 삶의 희망은 사그라졌습니다. 암환자로 알려진 이후부터 낙인이라도 찍힌 마냥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아들게 됐습니다. 더욱 괴로운 점은 암환자인 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입니다. 가족들조차 저를 피하는 것만 같고, 바깥출입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그저 동정심으로만 느껴져 자괴감이 상당합니다. 오죽하면 이러다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겠습니까."

김정환(가명, 51세) 씨는 지난 2007년 위암 판정을 받았다. 흔하다는 위암이었고 5년 생존율 또한 70%에 육박한다는 뉴스도 본 터여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수술만 잘 끝나면 예전 삶을 되찾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그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다. 건강을 회복하고 난 뒤 직장에 복귀했지만 동료들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회사 측의 배려로 야근이나 회식자리에 빠지면서 말수도 줄었다. 공감대를 형성할 거리가 자꾸 적어지자 이제는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웃음 가득했던 가족들도 어느새 자기들 역시 암환자라도 된 것처럼 우울한 기운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빠듯한 살림에 치료비와 약값을 계속 대느라 가세마저 기울자 가장으로서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자기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하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데는 암과 암환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 심영목·조주희 교수팀은 최근 '정신종양학회지(Psycho-Oncology)'에 발표한 최근 논문을 통해 "암과 암환자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과거 암을 곧 죽음이라 여겼던 때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암환자의 정신건강을 다루고 있는 대표 권위지인 정신종양학회지는 이번 논문을 주요 논문으로 다뤘으며, 최근 하버드의대에서 ‘이 주의 논문’으로 선정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심영목 교수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연구의 질 향상으로 암에 대한 이해가 상당 부분 늘었음에도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이나 무게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암환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강조했다. 

심영목·조주희 교수팀이 지난 2009년 성별, 지역, 연령에 따라 일반인 1011명을 표본 추출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고스란히 방증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1011명 중 58.5%가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암은 치료가 어렵다’고 답했다.

55.8%는 한 번 암에 걸렸던 사람은 건강을 되찾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이 암에 걸린 적이 없는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TV 등에서 보거나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암을 불치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대장암으로 진단받고 현재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 치료 중인 이민화(가명, 42세)씨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건강검진차 대장내시경을 받고 깨어난 뒤 의사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고 덜컥 겁부터 났고, 각종 검사 끝에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당장 곧 죽겠구나 하는 마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암환자의 대한 사회적 홀대로도 이어진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71.8%는 ‘암 환자는 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42.6%는 ‘암 치료를 받았던 사람은 남들처럼 사회활동을 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56.1%는 ‘암을 진단 받은 사람은 치료 후 건강이 회복되더라도 직장에서 업무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며 이들의 사회복귀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10명 중 5명은 암환자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암의 경우 전염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암환자와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답한 경우가 42.3%나 됐다.

조주희 교수는 "암환자는 암 그 자체보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게 된다는 점에 더 크게 괴로워한다"면서 "이로 인해 암환자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치료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깊고 오래 간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설문에 참여한 일반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를 주위에 밝히기를 꺼렸다. 

이번 조사에서 ‘암에 걸리게 됐다’는 가정 하에 암환자란 사실을 공개할 것인지 여부를 물은 결과 가족에게 조차 말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10명 중 3명꼴(30.2%)로 나왔다. 47%는 친구나 이웃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했다.

특히 응답자의 절반인 50.7%가 직장 동료가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나타냈다.

심영목 교수는 "항암치료의 대표적 부작용인 탈모로 인해 암환자란 사실이 노출될까 치료기간을 단축시켜 주거나 아니면 아예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어 이들을 볼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조주희 교수는 "삼성암센터가 처음으로 선보였던 외모관리 프로그램도 암환자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이지만 단기적인 대책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게 사실이고, 암환자들이 사회로부터 부적정인 인식과 편견, 차별로 인해 겪는 고립감과 삶의 질 저하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국가암정보센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5~2009년 암 발생자의 5년 생존율은 62.0%로 10명 중 6명이 5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현재 파악되는 암 생존자는 80여만 명으로 암도 이제 극복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성적에도 불구하고 암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처우를 겪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어 암환자의 사회적 상실감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암환자의 경우에는 47%가 암 진단 후 1년 이내에 직장을 잃는다는 조사가 있고, 재취업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일반인(30.6개월)에 비해 평균 1년 이상(46.3개월) 더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암 환자들의 사회참여 기회가 줄어든 만큼 반대로 사회적 고립이 확대되면서 환자의 정신적인 건강이나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교수팀이 전했다.